방사성폐기물의 발생과 처분장
방사성폐기물은 국가 책임하에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관리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권고하는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정책 및 전략 수립을 위한 10대 관리 원칙(Principles for Establishing a Policy and Strategy)’을 받아들여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TRIGA MARK II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하고, 1978년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가동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방사성폐기물 발생 초기에는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지에 우선 보관하자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 그러나 방사성 동위원소의 이용이 늘어나고 원자력 발전소의 수가 급증하면서 ‘발생지에 방사성폐기물의 보관’ 정책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1958년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원자력법」에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조항이 거의 없었다. 1982년 원자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제정되는 등 전면적인 원자력 관련 법안이 만들어졌으나 완전한 방사성폐기물의 관리 체재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사성폐기물관리 종합대책은 1984년 10월 13일에 열린 제211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최초의 종합대책은 ‘발생지에 방사성폐기물의 보관’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영구처분’으로 정책의 일대 전환이었다. 따라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는 와중에 발생한 고리원전의 쓰레기 매립사건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확보 사업을 촉진시켰다.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처분 부지확보 사업은 여러 차례의 실패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05년 11월 주민 투표를 거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분부지로 경상북도 경주시가 선정되었다.
방사성폐기물 발생자와 방사성폐기물 전담 기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가 선정되고 난 후 2008년 3월에 정부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제정하고 방사성폐기물 관리 전담기관으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하 “원자력환경공단”)을 지정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에 방사성폐기물을 전담하는 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방사성폐기물 전담기관의 탄생은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 체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기존의‘발생지에 방사성폐기물의 보관’정책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폐기물 발생자인 한수원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된 방사성폐기물을 자체적으로 처리하여 원전 내에 마련된 폐기물 저장고에 보관하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에 따르자면 원전의 방사성폐기물은 전담 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이 지정한 폐기물의 인수 조건과 절차에 따라서 발생지에 보관된 방사성폐기물을 처분장에 인도하여야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중심축이 국내 최대 방사성폐기물 발생자인 한수원 중심으로 움직이었다가 이제는 전담 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으로 옮겨간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의 최종 처분 관리 책임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았고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주도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권고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 및 전략 수립 10대 원칙의 8번째는 방사성폐기물의 발생에서부터 최종 처분까지의 모든 과정은 서로 연계됨으로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도 이 연계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환경공단은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의 최종 안전관리를 위해 방사성폐기물의 발생부터 최종 처분까지의 모든 과정을 일관된 방침 하에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야말로 방사성폐기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운영
방사성폐기물 관리 전담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의 가장 큰 임무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운영이다. 약 210만㎡면적을 차지하는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하 “경주방폐장”)의 폐기물 처분 규모는 200리터 철제 드럼 기준으로 총 80만 드럼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2014년 12월에 사용 승인을 받은 1단계 처분시설은 10만 드럼 규모의 지하 동굴처분시설이며, 2026년부터 운영을 개시할 예정인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총 25만 드럼의 처분 규모를 가진다.
경주방폐장에는 극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분을 위한 매립형 처분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약 16만 드럼의 극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한 매립형 처분시설까지 완성되면 모두 51만 드럼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이 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29만 드럼의 처분시설이 추가로 들어서야 하고 모두 합해서 80만 드럼의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2024년에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2038년 목표 원자력발전소 운영 계획에 따라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고려할 때, 경주방폐장의 처분용량이 충분하지 여부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우리나라에 경주방폐장과 같은 또 하나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떻게든 경주방폐장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모든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 최선의 대안은 방사성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이고 폐기물의 부피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은 크게 원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비원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로 나눌 수 있다. 원전 주기 시설은 주로 국영기업이나 공공 기관이 소유하고 있고 비원전 주기 시설은 병원이나 중소기업이 운영한다. 소유자의 특성상 원전 주기 시설은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으나 비원전 주기 시설의 소유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방사성폐기물의 발생량은 발생자의 노력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원전 주기 시설의 소유자들은 대부분이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시설을 가지고 있어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이고 처분장으로 가기 전에 적절한 처리를 한다.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처분과 관련되어 한 가지 짚어볼 점은 방사성폐기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원자력발전소의 폐기물 처리 시설이 대부분 경주방폐장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전에 설계되고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폐기물의 최종 처분을 효율적이고 용이하게 하는 방안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원전의 일부 폐기물 처리 시설은 처분 적합성이나 폐기물의 부피 감용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다수의 원전이 다섯 곳에 산재해 있고, 대체로 원전 2기가 같은 방사성폐기물 처리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처리 설비는 거의 모든 원전이 서로 유사해서 국가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부는 중복성을 가질 수 있다. 즉 원전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의 일부는 경주방폐장에 중앙집중식 처리시설에 설치하면 관리 측면에서나 경제성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이 거의 없는 비원전 주기 시설의 소유자들은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여 부피를 줄이고 처분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기 어렵다. 이들의 방사성폐기물의 부피 감용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당초 경주방폐장은 처리시설이 없는 비원전 주기 시설에서 발생한 방사성폐기물을 받아서 처분장 내에 처리 시설을 확보해서 폐기물을 처리 처분하는 것으로 기본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처리 시설은 확보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경주방폐장 내에 원전 주기 폐기물의 2차적인 처리와 비원전 주기 폐기물의 처리를 위한 종합처리시설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방사성폐기물의 종합처리시설
경주방폐장 내에 종합처리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이유는 원전 주기 폐기물의 2차 적인 처리와 비원전 주기 폐기물의 적절한 처리를 통해서 방사성폐기물의 처분 안전성을 높이고 폐기물의 부피를 대폭 줄여서 경주방폐장 하나로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원전에 폐기물의 처리 설비가 도입된 이후에 새로이 개발되거나 외국에서 입증된 최신 설비를 원전마다 새로이 설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원전에서 처리되어 방폐장으로 가는 폐기물의 일부는 방폐장에 최신 설비를 도입하여 2차로 처리하여 더욱더 부피를 줄인 후에 처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즈마 처리 시설을 방폐장의 종합처리시설 내에 설치하여 일부 원전 폐기물을 2차로 처리하여 폐기물의 부피를 감용할 수 있다. 대형 금속 페기물의 절단 설비 및 용융 설비도 그렇다. 이외에도 방폐장에 중앙 집중식 처리 설비를 이용하는 것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욱더 효율적인 방사성폐기물의 관리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비원전 주기 폐기물의 경우는 처분장 내에 종합처리시설의 필요성이 더 시급하다. 비원전주기 폐기물은 방사성동위원소 폐기물, 병원의 방사성폐기물 및 감손 우라늄 페기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형태의 비원전 주기 폐기물이 발생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발생한 비원전 주기 폐기물은 산업체에서 발생한 감손 우라늄이다. 그 외에 폐아스콘, 동물 사체나 유기 폐액 등이 처리 대상이다. 이러한 방사성폐기물은 건조 설비, 전기로 열분해 및 초고압 압축기 등을 처분장 내의 종합처리시설에 설치함으로써 처리 처분이 가능해진다.
방사성폐기물의 종합처리시설은 폐기물의 국가적인 관리 차원의 큰 틀에서 폐기물의 발생자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전담 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이 긴밀히 협조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발생자가 1차로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이고 부피를 감용한 다음에 처분장에서 종합처리시설을 통해 폐기물의 부피를 최소화한다면 경주방폐장 하나로도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고도 효율적으로 관리 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종합 관리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발생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보관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처분은 방사성폐기물 전담 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의 임무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발생자인 한수원과 처분자인 원자력환경공단이 잘 협의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관리 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주요 관건은 사용후핵연료의 저장과 최종 처분에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에는 반드시 처분장이 필요하며 처분장의 확보가 관리의 성패 여부를 결정한다. 처분장의 확보가 매우 어렵고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처분장 확보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장기간 보관하게 된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처분 사업의 주체자로서 지하연구소 확보부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장기간 보관하려면 보관 장소와 보관 용기가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의 장기보관 용기는 원자로의 특성에 따라 그 형태나 크기가 달라진다. 또 사용후핵연료의 보관 방식 및 보관 기간과 영구 처분 시 사용되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용기와의 연계성도 고려해야 한다. 즉 사용후핵연료 장기 저장에는 보관 방식에 따라 운반 용기, 저장 용기, 및 영구 처분 용기 등 여러 형태의 용기가 필요한데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용기는 매우 고가이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관련 용기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관리 원칙에 의거 유기적인 연계성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의 발생자인 한수원과 최종 처분자인 원자력환경공단은 서로 다른 기관으로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앞으로 수십조 원이 초래되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용기는 절대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유기적인 연계성에 따른 용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빨리 국가 차원의 콘트롤타워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관련 용기 국내 산업을 육성하여 세계적으로 막대한 시장이 전개될 사용후핵연료 용기 세계시장에 하루 빨리 진출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국가 차원의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폐기물 관리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관리 원칙은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키워드이다.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두 주체는 발생자인 한수원과 전담 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이다. 그리고 이를 감독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있다.
한수원, 원자력환경공단 그리고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 관리가 국가 차원에서, 폐기물의 발생부터 최종 처분까지 일관되고도 효율적인 관리가 되도록 서로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시간 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처음에 한국전력공사와 후에 생긴 한수원이 원자력발전 사업을 주도해왔고 나중에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자력환경공단이 생겼다. 당연히 방사성폐기물 관리도 한수원이 주도해 왔으나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생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규제기관의 감독을 받아오게 되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부지확보가 늦어지면서 원자력환경공단이 맨 나중에 생기면서 폐기물의 발생자, 전담기관, 그리고 규제기관의 삼각 축이 형성된 것이다.
국가 차원의 콘트롤 타워는 이들 삼각 축이 서로 잘 융합이 되어 안전하고도 효율적인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관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규제기관도 너무 이론에 치우치거나 여론에 민감하지 말고 전문성에 기초한 현실적이면서도 안전한 폐기물 관리가 되도록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산업계를 리드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의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안전하고도 효율적인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을 완성하는 길이고 또한 글로벌 원자력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